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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우물만 (10-19)
Panglossian

[pan-glows-ee-uhn]
: characterized by or given to extreme optimism, esp. in the face of unrelieved hardship or adversity.
지나치게 낙천적인
*볼테르의 "Candid" 중 Pangloss 교사의 낙천적인 성격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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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23:29-35
 Moon 
| 2007·08·23 10:01 | HIT : 2,581 | VOTE : 382
Proverbs 23:29-35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29 Who is always in trouble?
    Who argues and fights?
    Who has cuts and bruises?
    Whose eyes are red?
30 Everyone who stays up late, having just one more drink.
31Don't even look at that colorful stuff bubbling up in the glass!
   It goes down so easily,
32 but later it bites like a poisonous snake.
33You will see weird things, and your mind play tricks on you.
34You will feel tossed about like someone trying to sleep on a ship in a storm.
35You will be bruised all over, without even remembering how it all happened.
   And you will lie awake asking,
   "When will morning come, so I can drink some more?"

잠언 23:29-35

29.  재난을 당할 사람이 누구며,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며, 탄식할 사람이 누구냐? 까닭도 모를 상처를 입을 사람이 누구며, 눈이 충혈될 사람이 누구냐?
30.  늦게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혼합주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냐!
31.  잔에 따른 포도주가 아무리 붉고 고와도, 마실 때에 순하게 넘어가더라도, 너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아라.
32.  그것이 마침내 뱀처럼 너를 물고, 독사처럼 너를 쏠 것이며,
33.  눈에는 괴이한 것만 보일 것이며, 입에서는 허튼 소리만 나올 것이다.
34.  바다 한가운데 누운 것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것 같을 것이다.
35.  "사람들이 나를 때렸는데도 아프지 않고, 나를 쳤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이 술이 언제 깨지? 술이 깨면, 또 한 잔 해야지" 하고 말할 것이다.

     There are good things and bad things on the earth. They are like two sides of a coin. I thought God made those two because God is good and bad. For instance, God made water, but he also made wine that makes people go crazy as written in Proverbs 23:29-35. However, after reading the following passages, I realized that it was not true. God loved us so much that he gave us chances to choose things.  


죄가 들어오기 전 에덴동산은 어떤 곳이었나요?

만약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흰색이라면 지금의 "흰색"은 무슨 색이라고 불릴까? 만약 흰색만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색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나무도 하얗고, 풀도 하얗고, 하늘도, 꽃도, 사람도.. 모든 것이 하얀 색인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는 우리가 부르는 흰색을 "흰색"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연의 색"이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한 색깔만 존재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색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검은 색의 반대되는 것을 흰색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만약 검정도, 빨강도, 초록도.... 모두 없어지고 흰색만 남는다면, 더 이상 색과 색을 서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흰색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 그래서 "색은 무엇이다"라고 하는 이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색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세계 안에서도 흰색이 다른 색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흰색은 계속 흰색이지만, 단지 그것을 흰색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연 색"이라고 그 이름만 바꾸어 붙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처럼 악도 없었고, 슬픔도 없었고, 고민도 없었으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었다. 이곳에서는 의로운 일들을 의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악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에덴동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세계였다. 주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으며, (시 104:5)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나 슬픔을 주는 모든 악한 것들에 대하여 알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나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모든 악을 그들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게 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어진 완전한 아름다움과 행복이, 그들 마음에 이루어 놓으신 사랑을 완전케 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다. (창세기 2: 8-9)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이 땅의 모든 실과는 너희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이 나무의 과일은 먹지 말라고 하시고, 만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창 2:17 참고) 선악과는 단순히 어떤 규칙을 만드는 법이 아니고 선택을 주는 법이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세계는 완전하여 악의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시지 않았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랑은 단지 그들의 머리 속에 프로그램 된 무의식적 사랑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심어주신 것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하신 요한복음 14장 21절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에게 심어주신 그 자유의지가 어떻게 진정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과라는 법이 없었다면, 선악과를 따먹는 불법도 없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에 대하여 어떤 의심과 오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법을 만드셨는데 어떻게 불법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만약 불법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게 되었을까?" 라고 질문한다. 성경은 이러한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고 있다. 성경은 에덴에 선악과라는 법은 있었으나 이 법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불법을 알게 만들지 않았다고 창세기 2장 9절과 3장 22절에 말씀하고 있다. 선악과의 이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으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과 악을 몰랐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악만 몰랐던 것이 아니라 선도 몰랐다. 왜냐하면 악한 행동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선"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주심으로 그들이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신 것처럼 생각한다. 또한 어떤 법이 주어졌다면 일반적으로 이 땅의 법이 갖고 있는 특징처럼 에덴에서도 법과 불법의 의미가 동시에 존재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하나님께서 법을 만듦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이 생겨났다고 상상한다. 이러한 추측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완전하지 않았다거나, 하나님께서 죄를 창조하신 것 같은 결론을 내리게 유도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야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불법을 가르치지 않는 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만드셨던 법은 이 땅의 법과 달랐다. 에덴동산의 법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는 것이었고, 그 법을 어긴 결과는 "정녕 죽으리라"였다. 이 법을 나누어 보면 "먹지 말라"고 하는 규칙과, 선악과와, 그 규칙을 어긴 결과인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악과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다른 과일 나무와 다름이 없는 하나의 나무였기 때문에 다른 나무와는 달리 악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으며, "먹지 말라"라는 단어는 그 언어 자체로는 악을 가르치지 못한다. "먹지 말라"와 "살인하지 말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라고 법이 주어졌다면, 살인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었어야 하며, 그것은 곧 악을 가르치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살인하지 말라"든지, "도둑질하지 말라"하지 않으시고 "먹지 말라"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법을 만드신 것이다. 이 법은 지금의 법처럼 악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아니었고, 단순히 하나님을 선택하여 사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한 법이었다.

또한 이 법을 어겼을 때 주어진다고 했던 "죽음"이 아담과 하와에게 겁을 주어서 어쩔 수 없이 지키도록 강요할 수도 없었다. 아담과 하와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한번도 죽음을 본 경험이 없었다. 에덴동산의 나무가 가을 낙엽을 만들지도 않았으며, "영원한 삶"이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는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인 것처럼, "죽음"도 아담과 하와에게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로마서 6: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였는데, "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했던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그 삯인 사망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만약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 법에 순종하였을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에게 완전한 자유의지를 갖게 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는 의지를 통하여 줄 수 있는 사랑을 아담과 하와가 갖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만드심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완전케 하신 것이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사랑의 법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흰색이라면 색의 개념이 없어진다. 더 이상 서로 반대되는 색들의 세계는 없어지고 자연 색 하나만 남게 된다. 장미는 있으나 거기에 있어야 될 것 같은 가시는 없고, 태양은 있으나 해로운 자외선은 없다. 사랑은 있으나 질투는 없고, 성공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세계는 그 반대의 뜻이 완전히 없도록 완전하게 만드셨다. 사과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토끼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을 깊게 하다보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은 그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사물이 없다는 것을 이 타락한 세상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요한은 예수님에 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말씀은 곧 예수님 자신를 의미하며,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야고보서 1:17)므로 그 말씀인 율법은 그림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으신 그 완전한 세계로 복귀하게 될 때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반대개념은 사라지게 되어, 악의 반대 의미로서의 선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흰색이라면, "흰색"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행하던 모든 일들에 붙었던 "선"은 없어지게 되고 "자연적인 일" 또는 "당연한 일"이라고 부르게 된다. 더 이상 우리는 선한 행동을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야되는 자연 법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흰색이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흰색은 여전히 그 색을 갖고 있을 것이지만 그 이름만 바뀌게 되는 것이다. "선이라고 부르지 않는 선"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상태였으며 이 땅에서 성화를 통하여 마지막 세대가 얻어야 할 우리 마음의 최종적 목표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심으로 에덴에 다른 색을 만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기를 거절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 사랑하기를 거절하는 그 행위가 갖고 있는 본질에 대한 지식이 그들의 마음에 없었으므로 그것이 에덴의 색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선악과는 단지 아담과 하와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서는 안될, 어떤 다른 세계(죄의 결과의 세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만을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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